흑용의 해, 뚜벅뚜벅 걷다보면..
김해사랑 [2012-01-01 06:38:13]

2012 새로운 한해의 하늘이 열렸습니다. 임진(壬辰)년입니다.

용(龍)은 용기와 비상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힘찬 상승의 기운을 가진 용의 해가 열린 것만으로도 힘이 솟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 같은 용의 해에 그치지 않고  ‘임금’을 뜻하는 ‘흑’이 더해진 흑룡의 해로서 그 어느 때보다 길한 해라고 합니다.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흑룡의 해를 맞은 여러분의 기분은 어떠하십니까. 

지난 연말 우리는 오늘날과 같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있게 만든 두 분의 큰 별을 아쉬움 속에 떠나보냈습니다. ‘철강왕’ 박태준과 ‘민주화의 큰형’ 김근태. 12월에 함께 떠나서인지 두 분을 함께 떠올려봤습니다.

철강왕은 ‘제철보국’을 자신의 인생관으로 설정, 불굴의 의지로 포스코를 세계 4대 철강회사로 이끌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 주식을 단 하주도 갖지 않았고, 2000년 국무총리에서 물러나면서 정계를 떠날 때에는 자택을 처분해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습니다.

민주화 투쟁의 큰형은 서울대 입학 후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길을 마다한 채 얼어붙은 동토에 민주의 꽃을 피우는 힘든 길을 선택했습니다. 체포 26회, 10년간의 수배생활, 구류 7회, 5년5개월에 걸친 두 차례의 투옥과 숱한 가택연금. 전기고문 후유증에 말투까지 어눌해지는 힘든 생활을 했지만 그는 좌우 이념을 뛰어넘어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살다 합병증에 따른 폐혈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과연 무엇을 위한 선택이었고 희생이었겠습니까. 무엇을 위해 모래바람 마시며 죽겠다는 신념으로 일하고 살점 떨어져 나가는 고문의 고통까지 감내하며 독재에 저항했을까요. 자신이 아닌 사회와 국가를 위한 이타적 정신, 불굴의 신념과 담대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선각자와 영웅이 그리운 오늘날, 이들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자이자 시대의 영웅이 아닌가 싶습니다.

금년은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는 해입니다. 흑용의 기운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더 없이 많을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곳곳에 대형 선거현수막들이 내걸리고 있습니다. 사회와 국가를 위하는 강철왕이 되고 민주투사가 되어 달라는 바람을 갖지 않겠습니다. 이행하지도 못하는 공약 내세우지 말고, 말로만 위하는 그런 정치는 싫다느니, 그러니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느니 하는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흑용이 그냥 흑용이 아닐 듯해서입니다. 등에 올라탄다고 모두를 승천시키지는 않겠지요.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저울질 하는 사람, 무개념으로 갈지(之)자 걷는 사람, 가만히 있다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을 신비스런 흑용이 구분 못할 리 있겠습니까. 단지, 무턱대고 겁 없이 올라타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상사가 없도록 하시라는 말만 하고 싶습니다.  

새해가 시작됐지만 아직까지는 딱히 희망의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장밋빛 전망도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년도 예년에 그래왔던 것처럼 묵묵히 뚜벅뚜벅 걷다보면 혹시 압니까, 흑용이 태워줄지. 맹자(孟子)의 고자장(告子章)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해 봅니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천장강대임어사인야)인대
必先勞其心志(필선노기심지)하고
苦其筋骨(고기근골)하고
餓其體膚(아기체부)하고
窮乏其身行(궁핍기신행)하여
拂亂其所爲(불란기소위)하나니
是故(시고)는 動心(동심)하고 忍性(인성)하여
增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이니라.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내리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듯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그 몸과 살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빈궁에 빠트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2012년 새해를 맞으며 저는 지인들에게 「용꼬리 꽉 잡아 만사(萬事) 승천하고, 건강, 사랑, 행복 넘쳐나는 한해 되십시오」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발행인 / 정 지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