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 미술의 새로운 귀환
김해사랑 [2012-11-03 10:58:21]
도자 미술의 새로운 귀환
여러분은 '도자미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지요? 아마도 우리가 연상하게 되는 것은 대개 백자, 청자를 비롯한 항아리와 그릇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도자비엔날레 등에 출품된 작품들 중에 항아리나 백자와 같은 전통적인 도예 작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주류미술의 변방에 존재해왔던 도자미술은 80년대 이후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하여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

도자미술은 태초의 인류와 함께 시작되어 장구한 역사를 거쳐 왔습니다. 인간은 음식을 담기 위해 흙으로 그릇을 빚어 깨지지 않도록 불에 굽고, 미관과 기능을 위해 유약을 바르고,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인간이 집을 지으면서부터 장식이나 표식을 위해 타일이나 벽돌을 사용했죠. 바로 이렇게 흙으로 구워 만든 그릇, 벽돌, 타일 등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도자미술들로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자미술들은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줄곧 단순한 손기술을 사용하는 공예로 여겨졌을 뿐, 고급 미술로 취급되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손기술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던 회화 조각 건축이 르네상스 이후 지적인 고급예술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죠.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 생겼던 미술대학은 미술 장르에서의 위계질서를 만들었는데, 그 중 도자미술과 같은 공예는 가장 하급 장르에 속했습니다. 회화·조각·건축이 손기술을 사용하는 육체적 활동으로부터 미적인 이념을 추구하는 정신적인 활동으로 격상되어 고급 주류미술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을 때조차도 도자미술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17세기 바로크 화가 베르메르가 살았던 델프트에서 아름다운 도자기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웠을 때조차 상황은 마찬가지였죠.
 
 한편,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된 도시산업화와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전통적인 도자미술은 점차 값싸고 사용하기 편리한 재료들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근대화 시기 사람들은 제조 과정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비싸고, 사용하기에도 무거운 도자기 그릇대신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유리나 플라스틱 그릇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아파트나 고층 빌딩이 등장하면서 비용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벽돌이나 타일 대신 콘크리트, 강철, 유리 등 값싸고 편리한 건축재들이 선호되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도자미술은 설 자리를 잃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7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포스트모던 미술은 도자 매체가 가진 새로운 잠재력과 가능성들을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매체들을 개발하고 다양한 매체들을 혼합적으로 사용할 뿐 아니라 관습적인 미술의 장르 자체를 무너뜨린 포스트모던 미술은 도자매체를 전례 없던 방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죠. 현대 작가들은 도자를 새로운 매체로 인식했고, 그 동안 전통적인 도자 작업을 해왔던 미술가들 역시 순수미술에 관심을 돌렸습니다. 그리하여 과거의 그릇이나 벽돌과 같은 기능을 가진 도자미술이 아닌, 기능을 배제한 조형미술로서의 도자조각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다양한 전통적인 미술의 재료와 함께 영상, 음향, 그리고 건축적인 공간 등을 결합시키는 새로운 개념의 설치미술은 도자를 현대 미술의 하나의 중요한 매체로 빠르게 흡수하게 되었죠. 애초에 공간 속에 연출되던 도자미술은 설치미술에 있어 상당히 유리한 매체로 작용했습니다. 설치미술은 작품과 그것이 전시되는 공간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며,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까지도 작품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전시 공간을 작품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관습적인 작품 전시 방식과는 다른 것인데요. 공간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덩어리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자미술은 상당한 강점을 가집니다. 도자미술은 공간 속에 연출됨으로써 연극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내러티브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도자미술은 포스트모던 미술의 새로운 경향으로 떠오른 설치미술 장르를 통해 주류 고급미술로, 또한 실생활에 사용하는 기능적인 공예품이 아닌 순수미술로 편입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미술사를 통해 변방에 머물렀던 도자미술은 현대 설치미술을 통해 주류, 순수미술로 새롭게 귀환했습니다. 현대미술의 경계를 확장한 도자작품들은 작품과 그것이 놓이게 되는 공간, 혹은 장소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룸으로써 현대 설치미술에 큰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흙을 사용하는 도자 재료들은 새로운 매체를 찾고자 하는 현대 미술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었지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시대에 도자미술은 자신이 가진 전통으로부터 새로운 조형의 언어를 이끌어 냄으로써 기능적인 요소와 무관한 순수한 미적 대상으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최정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관장)